형과 상의 거리

이번 그림들은 우리나라의 건국신화 즉 단군 신화에서 부터 오늘에 이르는 역사를 큰 사건이나 변화를 택하고 다룸에 있어 통사적인 이해를 목적으로 역사의 내용을 연숙적으로 엮어가는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조건 지워질 수밖에 없었던 시간과 장소 또는 상황 속에서 직접 간접적으로 겪은 체험, 나아가 보여지는 그런 모습들인 것이다. 따라서 객관화된 역사화나 기록화는 아니다.

역사의 한 시대를 내다 봄에 있어 사람들은 누구나 당대의 인식성의 범위 아래서 생각하고 말하고 가치 판단을 내린다고 한다.

미셀 푸코 (Michel Foucault, 1926-1984)의 견해에 의하면 역사는 통사적으로 서술 될 수 있는 하나의 전체성이나 연속성이 아니고 인간의 생각과 실천형식들을 바꿔놓는 단절과 불연속선과 리듬의 변화들이 군데군데 매듭지어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이 역사는 여러 측면과 양상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나의 생각과 활동의 반경은 곹 우리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고 우리는 우리 전체와 어떤 고리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번 나의 그림에서 읽을 수 있는 것과 우리와는 자연 상관관계를 가질 수 있지 않을 까 한다. 즉 나의 그림에 나타난 모습들에서 나의 사고는 물론 습관 몸짓 까지도 유추할 수 있다고 생각 한다면, 그것들은 동시에 우라와도 정서가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있다.

아방가르드 이후 현대 미술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미술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열려진 개념, 확대 이로써 열려진 창구에서는 각양 각색의 다양한 양식과 이론 즉 탈개념, 탈이미지 (이야기 배재=탈문예적) 그리고 환원과 평면, 절대 순수지향, 이런 일련의 주장들은 결국 탈장르 그리고 회화의 존재방식까지도 제거한 바 있고, 아이러니칼  하기도 어떤 행위 미술의 일회성을 보존하기 위해서 사진과 글 (이미지와 문예적)을 다시 의존해야만 했는가 하면, 모더니즘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작품에 대한 설명 (문예적)을 먼저 배우거나 의존하지 않으면 아득한 별천지의 놀음일 뿐이었다. 이론이 먼저이고 그림은 그 도해라는 비판을 낳았던 것이다.

역사는 시계추와 같이 오고 가거나 수레바퀴처럼 돈다고 한다. 다시 사실 형태가 등장하고 이야기 이미지… 물론 비형태적인것 역시 그러나 다시 나타난 이런양상이 종전 그대로의 것이 아닌 것은 다른 상황들의 도래로써 복합작용에 의한 산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나의 이번 작품에서 이야기와 형태와의 관계, 내용으로서 정신적인 것과 그림으로써의 물질적인 것과의 관계, 즉 물질로서의 형태가 어떻게 이미지를 머금고 발산할 수있을까? 긋고 칠해서 만든 상징, 기호, 문자, 그리고 정형과 비정형 이런 것들이 정신의 환치물(자국)이 될 수 있을까?

또한 한 화면에서 이중 삼중 이미지가 겹친다거나 화면 구성의 전에 혹은 변주를 통해서 한 이미지에 치우치지 않고 중성 구조를 이루게  한 것, 이런 모든것들이 얽히고 설켜서 통합 이미지로써 목적에 가까워지려는 의도를 하였던 것이다.

부분적으로 단 한번의 필선이나 동작으로 이루워진 형태가 목적하는 바와의 거리 때문에 수없이 지우고 다시 그리는 과정들은 마치 선조들이 정관 상태의 정신상태에 도달해서 대상과의 합일이 이루워 졌을 때 나오는 필선을 택하고 나머지 것은 버리는 일과 일맥 상통한다고나 할까?

이런 일련의 해묵은 명제에 다시 빨려들 수밖에 없었던 것은 명증한 논리 넘어 불가사의한 세계는 항상 있어 왔다는 것과 이런 점들에 밀도를 더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개구즉착이라고 노자가 일찌기 갈파한 언어비판의 말이 시사한바있듯이 미술에 대한 논의가 자칫 말의 유희에 불과 할 수밖에 없다고 봤을 때 나의 작업에 대한 변 역시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솔바람이 왜 일어야 하는 가를, 굼뱅이가 의미없는 몸동작을 왜 계속하는 가에 대한 설명이 꼭 필요한 것일까? 그리고 가능한 것일까?

1996년 3월

윤경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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